거두기와갈무리
작물을 열심히 길렀으면 또한 거두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 거두는 목적이야 당연히 사람이 먹기 위해서인데, 예외적으로 가꾸기의 일부로서 의미가 있는 것도 있다. 가지치기와 순지르기의 의미처럼 작물이 열매를 튼실하게 맺게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열리는 열매는 미리 따주는 작업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추와 오이 같은 것인데, 처음 열린 것을 따주면 다음 꽃과 열매에 영양분이 몰려 수확을 많이 맺게 해준다.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은 솎아주기다. 줄뿌림이나 흩어뿌림으로 파종한 경우는 반드시 솎아주어야 한다. 물론 점뿌림을 했을 때에도 콩은 그냥 두지만, 배추 같은 경우 서너 개씩 심었다면 솎아주기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솎아주기를 할 필요없이 간격을 적당히 주어 심으면 그런 수고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작물이 싹을 틔워 어느 정도 자랄 때는 여럿이 함께 있을수록 좋다. 그러고 나서 작물이 꽤 자랐을 때는 포기마다 서로 부대끼기 때문에 포기가 다 자랐을 때의 간격을 염두에 두고 솎아주어야 잘 자란다. 솎아주기의 횟수 또한 작물마다 다른데, 배추같이 모종 단계에서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직파를 하는 시금치도 한 번으로 끝내지만, 대파 같은 경우는 옮겨주기를 여러 번 하면 더 굵게 자라기 때문에 그때마다 솎아주기를 해주면 좋다. 상추도 직파했을 경우는 두세 번 솎아주면 좋다.
솎아주기는 거두기 작업의 일부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솎은 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거리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며,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첫 열매를 따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꾸기에서 중요한 작업이라 하겠다. 그 다음은 작물이 다 자라 거두는 것인데, 거두는 시기나 횟수는 작물마다 다르다. 벼나 보리, 감자처럼 때가 되어 일시에 거두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고추 같이 7~8번 거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한 번에 거두는 것과 그때그때 먼저 익은 것을 필요한 만큼 거두는 것이 있다.
거둘 때는 주로 낫으로 대를 베는데, 낫을 숯돌로 잘 갈아서 대를 비스듬히 베는 게 중요하다. 나뭇가지 자르듯이 타격을 주어 베면 나락이 떨어질 수도 있고 또 나락이 심한 충격을 받으면 좋을 게 없다. 거두고 나면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갈무리다. 갈무리는 작물마다 작업이 다른데, 여기서는 간단히 벼 같은 곡식류와 고추 같은 양념류를 짚고 넘어가보자. 자세한 것은 '작물'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벼나 보리나 깨같이 알곡 종류는 거두고 나서 탈곡을 해야 하는데, 달린 열매를 잘 떼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도리깨질이라 하는데, 낫으로 거둔 줄기를 잘 말린 다음 바닥에 비닐 같은 것을 깔고 막대기로 두드려 패는 일이다. 그렇게 떨어진 알곡은 다른 검불들과 섞여 있어 이 검불과 분리하는 작업이 바로 체 치는 일과 키질이다.
여기서 도리깨질이나 체 치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키질은 고난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필자도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데,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일단 바람을 이용하여 가벼운 검불과 알곡을 분리하는 일이다. 바람이 잘 부는 날 바람을 등지고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더라도 숙련된 사람은 키를 위아래로 흔들면서(정확히 말하면 위아래로 흔드는 게 아니라 옆에서 보았을 때 세워진 타원으로 돌린다) 그 안에서 바람을 일으킨다.
때로는 입으로 바람을 불면서 검불을 떨어내기도 한다. 다음의 중요한 과제는 알곡과 섞인 돌을 골라내는 일인데, 이는 알곡과 돌의 무게 차이를 이용한 작업이다. 돌은 알곡보다 무겁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무게를 이용해 돌은 앞으로 모이게 하면서 떨어내고 가벼운 알곡은 돌보다 위로 던져서 안쪽으로 모이게 한다. 하여튼 말은 쉽지만 이런 기능을 익히려면 열심히 반복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원하는 알곡을 얻었으면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가공을 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벼나 보리 같은 곡식을 찧는 일(정미)이다. 곡식을 찧을 때에는 절구를 쓴다. 절구는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요즘은 정미소에서 기계로 한꺼번에 찧기 때문에 텃밭농사처럼 소량의 곡식은 직접 절구로 찧어 먹어보는 재미도 좋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요즘은 농가마다 가정용 정미기를 대부분 갖고 있어 아는 시골 농가에 가서 부탁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다음해 종자로 쓸 것은 되도록 충격을 주지 않고 손으로 훑어 내는 게 좋다. 충격을 받은 종자는 약하게 자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어려운 갈무리 작업은 고추 같은 경우다. 고추의 갈무리는 김장이나 고추장 담글 때 쓸 양념가루를 만드는 일인데, 말리는 일이 제일 힘들다. 아마 고추만큼 농사 짓기 힘든 작물이 없을 텐데, 모종 키우기도 힘들고, 정식하여 가꾸는 것도 어렵지만 말리는 일이 그 중 제일 힘든다고 할 정도로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기계에다 넣어 한 번에 말리면 쉽지만 텃밭농사에선 태양초를 만드는 일이 더 의미가 있기에 힘들어도 직접 말리는 게 더욱 좋다.
고추 말리는 작업은 '고추' 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일 중요한 원리만 지적하고 넘어가보자. 고추 말리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은 숨죽이는 일이다. 고추 열매 속의 수분을 빼내는 일을 말하는데, 이 숨을 죽이지 않은 채 강한 햇빛에 노출시키면 하얗게 타기도 하고 반면 궂은 날에는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고추 숨죽이는 일 중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고추 열매를 일일이 가위로 가르는 일이다. 양이 많으면 매우 힘들지만, 양이 적다면 해볼 만한 작업이다. 다음으로 대부분의 갈무리 작업은 잘 말리어 썩지 않게 보관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고구마는 항상 상온으로 보관해야 그 맛이 유지되고, 감자는 건조한 그늘에서 보관해야 싹도 틔우지 않고 잘 보관된다. 아무튼 자세한 것은 각 '작물' 편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갈무리는 농사 짓는 일만큼 힘들고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만은 꼭 알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