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해충 관리
유기농에서 병해충에 대한 대책은 농약을 치지 않기에 항상 예방의 관점에 서야 한다. 다시 말해, 병해충에 대해 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기에 앞서 작물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것이다. 작물 또한 하나의 생명체이기에 외적인 공격자에 대해서 스스로 방어 능력을 갖고 있다. 작물이 갖고 있는 방어 능력을 예로 들면, 강한 표피 조직이라든가, 독특한 향과 맛이라든가, 아니면 따가운 가시 같은 것들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느 작물이 외부의 침입자에게 공격을 받으면 곧바로 주변의 같은 동료들에게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 속도가 1분 동안 24미터를 간다고 한다.1)
그런데 병해충을 해결하기 위해 농약을 치게 되면 작물은 스스로의 방어 능력을 잃게 된다. 이 방어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은 작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보통 식당이나 시장에 가서 사온 음식을 먹어보면 옛날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농약으로 인해 고유의 맛들을 다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은 음식들을 먹어보면 어렴풋이 어릴 때 먹어보았던 그 맛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농약 친 채소들을 먹다가 유기농 채소를 먹어보면 질긴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도 작물이 병해충을 이기려고 스스로 표피 조직을 강하게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농약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질겨서 먹기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먹다보면 곧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옛날 맛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농약에 길들여진 작물은 방어능력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땅도 농약에 중독되기 때문에 천적이 살 수 없어 더더욱 작물을 도와주는 협력자를 잃게 된다. 그러니 한번 농약을 치게 되면 점점 작물은 농약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게 된다.
농약 중독으로 흙이 죽으면 천적뿐만 아니라 흙과 작물 뿌리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도 죽게 된다. 이 미생물들이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서 작물이 먹을 수 있는 무기 영양분을 만들어내는데, 이 미생물들이 죽어버리니 작물이 흙 속에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질 못하게 되어 결국 사람이 화학비료라는 인공적인 무기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화학비료에 익숙해진 작물은 자생력이 떨어져 더더욱 방어능력을 생성하질 못해 농약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농약과 화학비료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길들여진 작물은 그 조직이 부드럽고 맛도 달다. 이러다 보니 사람이 먹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마찬가지로 병해충도 아주 좋아한다. 여하튼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맛에 길들여져 무조건 부드럽고 단것만을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작물 육종도 자꾸 이런 방향에 맞추어져 종자도 부드럽고 단것 위주로 만들어지게 되고, 옛날에 자주 먹던 우리 고유의 토종 종자들이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왜곡된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과와 배 같은 과일들이다.
사과 같은 경우는 거의 단맛 위주로 개량된 부사 사과만 재배되고 옛날에 먹던 홍옥이니 국광이니 하는 다양한 토종 사과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옛날의 사과들은 지금처럼 그렇게 달지만 않고 사과 고유의 신맛이 강했다. 그런 사과 종류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들이야말로 외적에 대한 자신의 방어 능력이자 또한 사과가 갖고 있는 훌륭한 영양가였다. 이런 사과의 고유 특성이 사라지니 지금은 절대 무농약 농사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사과처럼 다른 작물들도 농사에 길들여진 종자들로 바뀌어버린다면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작물의 자생력과 방어 능력을 키워주는 환경 조성이란 어떤 것일까? 우선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으로는 흙을 살리는 일이다.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으면 흙은 스스로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그러나 농약과 비료에 죽은 흙을 살리려면 좀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좋은 거름을 넣어주어 다양한 미생물과 작은 벌레들이 살 수 있는 흙의 생태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거름을 제대로 넣어주면 작물이 힘차게 자라 벌레들이 공격을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버틸 수가 있다.
그 다음으로 작물의 협력자인 천적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천적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핵심에는 풀에 있다. 이른바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잡초라는 풀들은 절대 농사의 적이 아니다. 풀 또한 농사의 협력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유기농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우선 풀은 천적이 살 수 있는 좋은 서식처를 제공해준다. 뿐만 아니라 풀은 광합성을 하며 뿌리를 통해 흙 속에 계속 영양분을 공급해주며, 그 뿌리에 의지하여 다양한 유익 미생물들을 살게 해준다. 풀이 있어야 살아 있는 땅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유기농에서도 풀은 매주어야 한다. 그래야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풀을 베어서 멀리 갖다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농사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일단 풀을 천적의 서식처로 삼게 만들려면 매더라도 다시 그 흙 위에 깔아준다. 그렇게 깔아준 풀은 천적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벌레와 생명들이 함께 살게 되어 살아 있는 생태계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풀을 깔아주면 흙 속의 습기를 보호하여 흙 속에 있는 다양한 생명들을 살려주며 삭으면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병해충이 심하면 무언가 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를 먼저 실행하기 전에 기다릴 줄 아는 태도를 먼저 배워야 한다.
아무리 작물이 자생력이 있고 천적들의 협력을 받는다 해도 병해충들도 하나의 생명이기에 작물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자랄 수는 없는 법이다. 당연히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기게 되어 있는데, 그러나 모든 작물이 폭삭 다 피해를 입는 법은 거의 드물다. 피해를 입더라도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믿음을 갖고 기다려보면 다시금 작물은 자기 치유력을 회복하여 어느샌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 다음으로 중요한 태도는 자신이 재배한 것을 모두 다 완벽하게 수확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우리 조상들은 곡식 세 알을 심어 새와 벌레들과 함께 먹고사는 공생의 지혜를 갖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병해충이 생기더라도 모든 것을 다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약한 놈 몇 개를 집중 공격하기 때문에 그놈들은 병해충들에게 먹으라고 하고 나머지를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공생의 지혜는 거꾸로 얘기하면 일종의 미끼 전략일 수 있다. 곧 그런 약한 놈에게만 병해충이 끼이도록 하고 나머지를 정성껏 키우면 되는 것이다.
공생의 지혜 중에 또 하나를 소개하면, 고추 같은 경우 모종을 옮겨심게 되면 약한 모종의 목을 잘라먹는 거세미의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 또한 너무 애태워하지 말고 그놈들로 인해 피해를 당한 고추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들깨 모종을 심으면 좋다. 들깨의 향을 그놈들이 싫어하는데다 고추 열매에 기생하는 벌레들도 예방할 수가 있어 좋다.
그렇다면 병해충에 대한 몇 가지 대책을 소개해보도록 하자.
일단 가장 큰 원칙은 섞어짓기와 돌려짓기를 잘 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토마토밭에 파를 심어 파 향으로 벌레를 예방할 수도 있고, 고추밭 사이사이에 들깨를 심어 들깨 향을 싫어하는 고추 나방이를 예방할 수 있다. 더불어 미끼 전략을 쓸 수가 있는데, 배추밭 군데군데 벌레들이 아주 좋아하는 양배추나 케일을 심으면 배추를 보호할 수가 있다.
또한 돌려짓기를 하면, 전해의 같은 작물에 익숙해져 계속 그 흙 속에 숨어 있다가 공격하는 병해충으로 인한 연작 피해를 피할 수가 있다. 섞어짓기와 돌려짓기의 직접적인 효과는 한 작물만을 대량으로 심어 생길 수 있는 단일종의 병해충의 창궐을 막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병해충을 예방하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작물 포기 사이사이로 풀을 깔아주는데, 벌레들이 싫어하는 풀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쑥을 뜯어다 깔아준다든가, 아니면 타작하고 남은 들깨나 참깨대, 마늘대를 깔아주는 방법 등이다.
그 외에 농약이 아닌 자연농약으로 외적인 치유책을 쓸 수 있는 소재와 방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자연농약 소재로 대표적인 것들은, 숯을 구울 때 연기가 액화되어 생기는 목초액과, 다양한 풀과 채소들로 만드는 청초액비 등이 있고, 일상 생활용품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는 식초와 소주와 우유와 설탕, 마지막으로 담배 꽁초도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다.
목초액은 앞에서 자세히 설명했기에 간단하게 말하면, 목초액이란 불의 기운을 액화한 물질이기에 불 냄새가 나고 해독 기능이 뛰어나 병해충이 아주 싫어하는 물질이다. 물론 목초액은 자연농약이기도 하지만 인산과 가리 같은 유익한 영양가를 갖고 있어 작물의 표피 조직이나 목질부(열매 꼭지)를 튼튼히 해주는 효과도 있다.
청초액비는 다양한 풀과 채소들을 흑설탕과 소금으로 삭힌 풀 액화비료인데, 이는 다양한 발효균을 농축하고 있어 병해충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한 당연히 작물이 싱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영양분도 갖고 있다. 식초와 소주는 특유의 톡 쏘는 맛으로 병해충이 아주 싫어한다. 이를 합성세제가 아닌 빨래비누 물에 타서 작물에 뿌려주면 빨래비누는 식초와 소주를 작물에 코팅해주는 역할을 하여 효과를 더욱 오랫동안 지속시켜준다.
우유와 설탕은 벌레의 피부에 달라붙어 마르면서 피부로 숨을 쉬는 벌레들을 죽이는 역할을 하며, 담배꽁초를 물에 우려낸 물은 담배의 독한 냄새로 벌레들을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목초액과 청초액비는 보통 광범하게 자연농약으로 쓰이는데, 200배 물로 희석해 잎사귀에 살포해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목초액 같은 경우는 콩이나 잡곡류 씨앗을 심을 때 100배로 희석한 물에 1시간 가량 담가두었다가 심어주면 까치 같은 새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냄새가 싫어 새들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물에 담가두었기 때문에 싹을 틔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담가두면 오히려 종자가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으므로 적당한 시간을 지켜주어야 한다.
모종을 키울 때에는 싹을 틔운 지 얼마 안 되어 연약하므로 약하게 해서 뿌려주어야 하는데, 약 400배 희석한 물이 좋다. 목초액이나 청초액비는 농약과 달라서 한 번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작물이 어느 정도 힘을 받기 전까지 약 3일이나 5일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뿌려주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진딧물 같은 경우는 우유가 효과가 좋다. 상한 우유도 괜찮은데, 약 50배나 100배로 희석하여 잎사귀에 살포해주면 된다. 진딧물은 보통 잎사귀 뒷면에 기생하기에 분무기로 밑에서부터 뿌려주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햇빛이 좋은 낮에 뿌려주어야 우유가 마르면서 진딧물을 말라 죽일 수 있다.
특히 배추에 많이 끼는 파란 애벌레는 설탕물을 쓰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직접 애벌레에게 닿도록 뿌려주어야 하는데, 애벌레는 피부로 숨을 쉬기 때문에 설탕물을 뿌려주면 마르면서 숨구멍이 막혀 죽게 된다. 설사 죽지 않더라도 끈적끈적한 설탕물 때문에 활동이 둔화된다. 이 또한 해가 있는 낮에 뿌려주어야 효과를 본다. 그리고 위의 소개한 소재들을 섞어서 쓰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식초나 소주 그리고 담배꽁초 우린 물도 마찬가지다. 목초액 같은 경우는 마늘과 매운 고추를 6개월 이상 목초액에 담가 숙성시키면 매우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