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키우기
사실 텃밭이나 주말농사 정도의 소규모에서는 모종을 키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양도 적기 때문에 오히려 모종을 사다 심는 게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사실 농사의 반은 모 키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농사를 전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왕 농사에 뜻을 갖고 있다면 모종 키우는 것까지 알아야 농사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모종을 키우려면 비닐 하우스 같은 온실이 따로 있을수록 좋지만, 적은 양이라면 아파트 베란다나 옥상 위에다 간이 온실을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철이 아니라면 비가림만 되어 있거나 언제나 쉽게 물을 줄 수 있는 곳에서는 모종 키우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종을 키우는 목적은 고추처럼 이른 2월이나 3월 초부터 파종을 해야 하는 작물의 경우 서리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고, 또 씨앗이 작아 빗물 피해를 막기 위한 것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목적이라 함은 모종을 내어서 옮겨심으면 소출도 많고 더 튼튼히 크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작물이 모종을 내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모종을 키워 옮겨심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옥수수나 수수나 조나 밭벼나 무같이 뿌리를 깊게 내리는 작물은 옮겨심을 때 뿌리를 다칠 수도 있고, 한번 뿌리를 활착하면 그 자리에서 튼튼히 자라야 하기 때문에 옮겨심는 것은 좋지가 않다.
모종을 키우는 방법은 포트에다 심어 키우는 것이 있고, 맨바닥에 상토를 깔아 모가 자랄 모판을 만들어 키우는 방법이 있다. 포트에다 심는 것은 당연히 점파를 해야 하고 모판에다 키우는 것은 선파나 산파를 한다. 포트에다 심으면 나중에 옮겨심기 편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일일이 포트에 흙을 담는 일이 번거롭다. 반면 모판에 키우는 것은 그런 번거로움은 없지만 나중에 옮겨심을 때 뿌리를 다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텃밭농사에서는 양이 적기 때문에 포트에다 심는 것이 간편할 것이고, 양을 많이 하는 농사에서는 모판에다 키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옮겨심기 전에 모판에다 물을 듬뿍 뿌려주어 흙을 충분히 적셔놓으면 모종삽으로 조심스럽게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모종을 뜰 수가 있다.
포트이든 모판이든 모종 키우기에서는 상토가 제일 중요하다. 상토는 일단 물빠짐이 좋아야 하는데, 습기가 많으면 씨앗이 곯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토는 되도록 무균 상태이어야 하고, 풀씨가 없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균에 침투되면 작물이 약하게 자라게 되고, 풀씨가 많으면 그놈들과 경쟁하느라 제대로 자라기 힘들고 나중에 일일이 풀을 골라 뽑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다음으로 상토는 그렇게 비옥할 필요가 없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는 흙의 거름 힘으로 트는 게 아니라 씨앗 자체가 갖고 있는 영양분으로 틔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거름이 필요치는 않다. 약간의 거름이면 충분한데, 거름기가 너무 많으면 미생물이 많아 씨앗이 삭아버릴 우려가 있다. 상토는 종묘상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이 또한 스스로 만들어 쓰면 농사의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상토의 기본 재료인 흙은 산 속의 부엽토가 제일 좋다. 부엽토를 채취할 때는 표면의 흙을 걷어내고 약 30㎝ 이하의 속 흙이 좋다. 겉 흙은 너무 거름지고 풀씨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 속 흙을 채취하면 이를 체로 곱게 거르면 된다. 산 흙을 구하기 여의치 않으면 밭의 흙도 괜찮은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약 30㎝ 밑의 속 흙을 채취하여 체로 걸러낸다.
이렇게 구한 흙에다가 충분히 발효된 퇴비 약간과 모래와 재나 숯가루를 섞는다. 이 비율은 작물마다 또는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전체 100% 중에 흙 50%에 발효퇴비 30%, 모래와 숯 10%씩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모래는 배수를 좋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숯가루나 재는 항균, 방충 역할도 하면서 인산이나 가리 비료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숯가루도 직접 만들 수가 있는데, 가장 손쉬운 것은 왕겨를 태워 훈탄을 만드는 것이다. 훈탄을 만들면 부가적으로 목초액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 효과도 노릴 수가 있어 좋다.
왕겨훈탄 만들기
불지피는 통은 식용유통 같은 깡통을 반으로 자르고 사방에 구멍을 내는데, 그림처럼 삼각형으로 잘라 처마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공기가 통할 수 있다.
볏짚 같은 것으로 불을 지피고 그 위로 왕겨를 살살 덮는다. 왕겨에 불씨가 붙으면 수북이 왕겨를 쌓아 덮는다. 목초액 받는 통으로 연기가 살살 피어오르면 탄이 잘 만들어 지고 있는것이다.
왕겨 훈탄은 속에서부터 만들어지는데, 대략 10여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만든 상토를 포트에다 담거나 모판에다 깔고 나서 씨앗을 심는데 심고 나서는 표면 위에다가 약간의 왕겨를 살살 뿌려주는 것도 좋다. 왕겨는 보온 효과도 있지만, 왕겨의 마른 상태를 보고 물을 주어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어 좋다. 모종 키우기 중에는 고추가 가장 힘들다. 아직도 겨울 추위가 남아 있는 2월 말이나 3월 초쯤에 심어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온실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다, 밤에는 이불을 덮어주어 영하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를 해야 한다. 게다가 싹이 튼 후 잎이 네댓 개 되었을 때 가식(假植)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고추 모종 키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보온이다. 이를 위해 이중 온실을 만들기도 하지만 여기에다 모판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면 좋다. 우선 전해 늦가을쯤 모판으로 쓸 바닥을 10㎝ 깊이로 고르게 판 다음 볏짚을 깐다. 깐 볏짚 위에다 쌀겨를 깔고 그 위에다 상토를 깐다. 말하자면 볏짚과 쌀겨와 상토를 켜켜이 두 번 까는 것인데, 볏짚과 쌀겨는 보온 효과가 아주 뛰어난 재료인데다 10㎝ 땅 속에다 쌓기 때문에 냉해가 적다. 이렇게 모판을 준비해두면 가식할 때는 이중 온실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식할 때쯤이면 서리가 어느 정도 지나간 다음이어서 이 정도만 해주어도 추위에는 큰 걱정이 없다.
모종심기
모종 심는 시기는 작물마다 다르지만, 대개 떡잎이 나오고 다음으로 새순이 나와 잎사귀가 네댓 개 정도 되었을 때가 적당하다고 보면 된다. 줄기는 굵고 짧은 게 좋다. 심을 때는 구멍을 파서 반드시 물을 가득 붓고 모종을 넣은 다음 마른 흙으로 덮어준다. 심고 나서 물을 부으면 뿌리까지 닿지 않는데다 표토 위의 물은 금방 말라버린다. 일일이 물을 부으며 심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 심으면 좋다.
심는 방법 또한 작물마다 다른데, 고구마나 들깨 같은 경우는 눕혀서 길게 심고 흙을 잎사귀 목까지 덮는다. 대파 같은 경우는 눕혀 심는 것은 같지만 뿌리만 살짝 덮어주는 정도로 흙을 뿌리고, 그 외 대부분은 똑바로 심는다. 심기 전에는 모판의 모종이든 포트의 모종이든 반드시 물을 듬뿍 뿌려 뿌리가 물에 충분히 적시도록 해주어야 한다.